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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중락 - 낙엽의 눈물

admin2017.03.21 20:39조회 수 11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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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과정

차중락은 1942년 경성부에서 8남 3녀 중 셋째아들(3남)로 태어났다. 차중락의 부친은 경성 보성전문학교 마라톤 선수이자 큰 인쇄소를 경영하여 집안이 매우 부유하였고, 모친은 경성여자고등상업학교 단거리 선수였으며, 시인 김수영은 차중락 큰이모 아들이었으니 차중락 그와는 이종사촌간이었다.

 

운동선수

차중락은 서울장충초등학교, 경복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바 있다. 그는 학교를 다닐 때마다 육상선수로 활약하였고, 대학생 시절에는 보디빌딩을 하여 대학교 1학년 1961년 미스터코리아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대학생 시절

차중락은 원래 장래 희망이 영화감독이었으며 회화적 감성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특히 차중락은 초등학생 시절 포스터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이 거리마다 붙어 있을 정도로 그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기도 했다. 그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다닐 때, 그의 어머니 친구 아들 프랭키 손이 일본에서 활약하다 귀국을 하여 차중락이 부르는 노래를 우연히 듣고 "차중락이 너는 일본에 가면, 필경 대성공을 거둘 것이다."라는 말을 하여 차중락은 일본행을 결심했다. 그는 21세 때 대학교를 중퇴하고 밀항선도 탔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경상남도 부산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밀항 사기에 걸려들었다.

 

키보이스

그는 서울로 돌아와 그의 사촌형 차도균(키보이스 멤버 중 한 명)의 권유로 1963년 키 보이스에 합류했다. 그는 미8군 무대에 오른 첫날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시민회관 공연 때는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나갔는데 이 모습까지 비슷하다하여 '한국의 엘비스'로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차중락의 애인은 에바 가드너와 비교될 만한 미인이었으며 키보이스 멤버인 윤항기의 글에서는 이화여자대학교 메이퀸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녀와 차중락의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66년 가을 어느 날, 차중락의 애인은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그리고 그 해 11월 10일,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 및 편곡한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전국에서 크게 히트하였다.

 

사망

1968년 11월 10일, 차중락은 서울의 어느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뇌막염으로 쓰러져 사망하였다. 지금 그의 묘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공원묘지에 위치해 있다. 묘비의 글인 <낙엽의 뜻>은 조병화 시인이 짓고, 그의 맏형 차중경이 썼다. 묘비의 아랫부분에는 당시의 유명 배우들과 가수들의 이름이 나와 있으며, 그 다음 해부터 가수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이 제정되어 그 해 가장 뛰어난 신인들에게 이 상이 주어졌다. 낙엽상 제정 첫해 수상자는 나훈아와 이영숙, 그리고 1972년 제4회때는 김세환, 이수미가 수상하기도 했다.

 

 바람에 싸늘히 지는 잎사귀
 한 두 잎 떨어져서 흘러가다가
 뒤돌아보는 마음 하도 서러워
 저물고 으스스한 산길에 밤새가 울어
*남몰래 외로이 지는 잎사귀
 한 두 잎 떨어져서 흩어지다가
 아쉬워 서로 찾는 마음 서글퍼
 어둡고 바람 부는 산길에 밤새가 울어.
  전우 작사, 여대영 작곡
 

관련 글 주소 :  http://cjjoo.com/boards/7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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